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

요즘 계속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회사는 계속 커지고 있고, 다루는 데이터도 사용자도 예전과 비교가 안 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규모는 매년 늘었다. 그런데 내가 기술적으로 나아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답이 안 나온다. 무슨 판단을 하고 있나 며칠 생각해보니 이런 것 같다. 내가 하루에 내리는 기술적 판단의 대부분이 된다 / 안 된다다. 이건 이번 스프린트에 가능하고 저건 어렵다, 이 구조로는 안 되고 저렇게 하면 된다. 회의에서 나오는 질문의 형태가 대체로 그렇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한다. ...

11월 19, 2023 · Jun Kang

첫 강연 전날

내일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 창업 준비하는 팀들 대상이고, 점심 먹고 두 시간이다. 앞의 한 시간은 강연, 뒤의 한 시간은 팀별 자문이라고 했다. 요청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해도 되는 건가"였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아는 건 우리 서비스 하나를 몇 년 굴려본 것뿐이다. 책을 쓴 것도 아니고 유명한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앞에 서서 두 시간을 채운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거절할까도 생각했는데, 거절할 이유를 대라면 “자신이 없어서"밖에 없었고 그건 이유가 아닌 것 같아서 하기로 했다. ...

3월 11, 2023 · Jun Kang

개발자인가 CTO인가

자각 없이 시작했다 작년 여름, 주말마다 모여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CTO라는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냥 내가 웹사이트를 만들 줄 아니까 만들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시키는 걸 하고 테스트 넘기고 퇴근 시간을 기다렸는데, 주말에는 기획부터 같이 하는 게 재미있어서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개발인데 왜 이렇게 다르지 싶었다. DB를 뭘 쓸지, 클라우드를 뭘 쓸지 처음부터 다 골라야 했다. 안 해본 것투성이였는데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웹사이트 만드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 다만 그때의 자신감은 해본 범위 안에서의 자신감이었다는 걸 지금은 안다.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고 고르는 것과, 그 영역이 있는 줄 모르고 고르는 건 다르다. ...

6월 20, 2021 · Jun Kang

기능보다 보는 것을 먼저 만들기로 했다

연초에 파일럿을 열었다. 처음 만든 결과물이라 만족스러웠는데, 열고 나서 며칠 지나니 다른 게 걸리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얼마나 들어오는지 볼 수가 없었다. 장애가 나도 알 방법이 없었다. 누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다음 버전을 그대로 시작할 뻔했다 파일럿 피드백을 받아서 기획팀은 2.0 준비에 들어갔고, 나도 자연스럽게 개발 계획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췄다. 지금 이대로 기능을 더 얹는 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기능이 열 개에서 스무 개가 되면 확인해야 할 것도 두 배가 되는데, 확인할 방법 자체가 없는 상태다. 대량 데이터 파이프라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직접 들어가서 눈으로 봐야 했다. 그 방식으로 규모를 두 배로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는 뻔했다. ...

4월 11, 2021 · Jun Kang

일을 맡긴다는 것

혼자 만들 때는 몰랐던 게 있다. 내가 아는 걸 상대도 안다고 가정하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 처음 사람을 뽑았을 때 여름에 첫 사람을 뽑았다. 그전까지는 주말마다 내가 붙어서 만들었으니까, 사람이 한 명 늘면 단순히 두 배로 빨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용을 결정하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속도가 아니었다. 내가 옆에 없을 때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혼자 할 때는 막히면 그냥 내가 판단하면 됐다. 이제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시간에도 일이 굴러가야 한다. 그러려면 판단에 필요한 것들이 내 머리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밖에 내놓은 게 없었다. ...

11월 22, 2020 · Jun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