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만들 때는 몰랐던 게 있다. 내가 아는 걸 상대도 안다고 가정하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
처음 사람을 뽑았을 때
여름에 첫 사람을 뽑았다. 그전까지는 주말마다 내가 붙어서 만들었으니까, 사람이 한 명 늘면 단순히 두 배로 빨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용을 결정하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속도가 아니었다. 내가 옆에 없을 때 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혼자 할 때는 막히면 그냥 내가 판단하면 됐다. 이제는 내가 판단할 수 없는 시간에도 일이 굴러가야 한다. 그러려면 판단에 필요한 것들이 내 머리 밖에 나와 있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밖에 내놓은 게 없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되돌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내가 밤에 더 하면 만회되는 일과, 다른 사람의 시간이 걸린 일은 성격이 다르다. 잘못 굴러가면 내 시간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몇 달이 같이 없어진다. 그게 처음으로 무섭다고 느낀 지점이었다.
왜 이게 안 되지, 라고 생각한 시기
가을 즈음 답답한 구간이 있었다. 내가 보기엔 간단한 건데 진행이 안 되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게 상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그동안 남긴 지시들을 처음부터 쭉 읽어봤다.
나라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았다.
“그거 그렇게 말고 저번처럼 해주세요” 같은 문장이 줄줄이 있었다. 무엇을, 왜, 어떤 상태가 되면 끝인지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맥락을 다 갖고 있으니까 그 문장으로 충분했지만, 받는 쪽에는 그 맥락이 없었다.
내가 개발자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상대는 그 전제를 공유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걸 매번 빼먹고 결론만 던지고 있었다. 답답했던 건 상대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전달을 안 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바꾼 것
거창한 건 아니고 세 가지다.
결론 앞에 목적을 붙인다. “이 버튼 옮겨주세요"가 아니라 “가입 흐름에서 이탈이 많아서 순서를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이 버튼을 여기로"라고 쓴다. 목적을 알면 내가 놓친 더 나은 방법을 상대가 찾아낼 때가 있다. 실제로 몇 번 그랬다.
끝난 상태를 먼저 합의한다. 무엇이 되면 이 일이 끝난 건지를 시작할 때 적는다. 이게 없으면 다 만들고 나서 “이게 아닌데"가 나오고, 그건 전부 상대의 시간이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든다. 이게 제일 어렵다. 내가 “이거 쉬운데"라고 한 번 말하면 그다음부터 아무도 모른다고 안 한다. 그래서 요즘은 쉽다는 말을 안 하려고 한다. 나한테 쉬운 거지 그 일이 쉬운 게 아니다.
남는 생각
일을 맡긴다는 게 내 할 일을 덜어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보니 반대에 가깝다. 내가 머릿속으로만 하던 판단을 밖으로 꺼내서 말이 되게 만드는 작업이 새로 생긴다. 그 작업을 안 하면 맡긴 게 아니라 그냥 던진 것이 된다.
지금 팀은 아주 작고, 그래서 아직은 대충 말해도 어떻게든 굴러간다. 그런데 사람이 더 늘면 이 부분이 제일 먼저 터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지금 습관을 들여놓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적어둔다.
같이 해준 사람들에게는 고맙다. 내가 저렇게 말했는데도 결과물이 나온 건 상당 부분 상대가 알아서 메꿔준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