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 창업 준비하는 팀들 대상이고, 점심 먹고 두 시간이다. 앞의 한 시간은 강연, 뒤의 한 시간은 팀별 자문이라고 했다.
요청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해도 되는 건가"였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아는 건 우리 서비스 하나를 몇 년 굴려본 것뿐이다. 책을 쓴 것도 아니고 유명한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앞에 서서 두 시간을 채운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거절할까도 생각했는데, 거절할 이유를 대라면 “자신이 없어서"밖에 없었고 그건 이유가 아닌 것 같아서 하기로 했다.
뭘 이야기할지
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처음엔 자유 주제로 가려고 했다. 내가 편한 이야기를 하면 준비가 빠르니까. 그런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편한 이야기보다 자기한테 필요한 이야기가 나을 것이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미팅을 요청해서 참여하는 팀들이 뭘 하는지, 뭘 듣고 싶은지 먼저 물어봤다.
팀이 넷이었다. 하드웨어를 만드는 팀, 돌봄 서비스를 하는 팀, 데이터를 모아서 보여주는 팀, 현장에 장비를 배차하는 팀. 하는 일이 다 달랐고 개발자가 있는 팀도 없는 팀도 있었다. 개발을 계속 해오신 분도 계셔서 난이도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가 제일 걸렸다. 너무 쉬우면 아는 사람이 지루하고, 너무 어려우면 모르는 사람이 떨어져 나간다.
결국 우리가 초기에 실제로 부딪힌 것들로 잡았다. DB를 뭘 쓸지 고를 때 뭘 봤는지, 클라우드 비용이 왜 예상보다 나오는지, 서비스가 잘 돌고 있는지 어떻게 아는지.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했고 뭘 후회하는지를 말하기로 했다. 그러면 개발자가 있는 팀은 “우리도 저랬지"로 듣고, 없는 팀은 “저런 게 있구나"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들면서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처음 만든 건 너무 많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넣으니 한 시간에 도저히 안 들어갔다. 절반을 뺐다. 뺄 때 기준은 “이걸 빼면 나머지가 이해가 안 되나"였고, 대부분은 빼도 됐다. 내가 넣고 싶었던 것과 필요한 것이 달랐다.
기술 용어를 어디까지 풀어 쓸지도 계속 고쳤다. 나한테는 당연한 단어가 개발자가 없는 팀에는 벽일 수 있다. 결국 용어가 나올 때마다 한 줄 설명을 붙였다. 슬라이드가 좀 촌스러워졌는데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데모를 넣을지 말지도 고민했다. 실제 화면을 보여주면 이해가 빠르지만, 현장에서 안 되면 대책이 없다. 결국 화면은 캡처로 넣고 라이브는 안 하기로 했다. 첫 번째부터 모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한 번 소리 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다. 쓸 때는 몰랐는데 말로 하니 어색한 문장이 많았다. 그리고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다시 뺐다.
자문 시간은 준비할 방법이 없었다. 무슨 질문이 나올지 모르니까. 팀들이 하는 일을 보고 나올 법한 질문을 몇 개 적어보긴 했는데, 실제로는 다른 게 나올 거라고 본다.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모른다고 하고, 아는 범위에서 뭘 확인해보면 좋을지 말해주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 이유를 찾아봤다
준비하는 내내 “내가 해도 되는 건가"가 따라다녔다. 며칠 생각하다가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이론을 가르칠 수 없다. 그건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초기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고 굴려본 경험은, 그걸 지금 하려는 사람에게는 이론보다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어디서 막혔고, 뭘 몰라서 돌아갔고, 그때 뭘 알았으면 좋았을지.
그건 내가 줄 수 있는 것이다. 잘나서가 아니라 먼저 해봐서.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떨린다.
내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망하면 망한 대로 적어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