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 메일이 왔다. 그리고 안 가기로 했다. 그 결정을 지금 후회하고 있어서 적어둔다.
왜 지원했나
지식을 얻으려고 지원한 건 아니었다. 요즘은 어느 교수의 강의든 인터넷에서 찾아 들을 수 있다. 석사 과정에서 배우는 내용 자체는 혼자서도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먼 훗날 해외에서 일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고, 살다 보면 언젠가 박사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 다 학위가 있어야 문이 열린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게 아니라 나중에 필요할 때 없으면 곤란한 것이었다.
어디에 넣었나
학부를 미국에서 했다. 그래서 국내 석사는 이력이 안 이어질 것 같았고, 미국 쪽 온라인 과정 위주로 봤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온라인 학위가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 있고, 학위 이름은 캠퍼스 과정과 같다.
후보를 세 곳으로 좁혔다. 전부 컴퓨터과학 석사였다. 데이터나 AI로 이름 붙은 특화 과정도 있었는데 안 골랐다. 그런 과정은 내용이 빨리 바뀌어서 학위로 남기는 것보다 실무에서 따라가는 게 맞다고 봤고, 나중에 박사 가능성을 열어두려면 정규 컴퓨터과학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름이 알려진 학교로 골랐다. 해외에서 이력서를 볼 때 알아보는 이름이어야 지원한 의미가 있으니까.
세 곳이 마감도 다르고 요구하는 서류도 조금씩 달랐다. 성적증명은 학교에 요청하면 됐는데, 추천서가 문제였다. 졸업한 지 오래돼서 교수님들과 연락이 끊겨 있었다. 결국 일하면서 만난 분들께 부탁드렸다. 부탁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내 커리어를 위해 남의 시간을 쓰는 거라서.
지원 동기서는 영어로 썼다. 왜 지금 이 과정이 필요한지를 쓰는 건데, 쓰다 보니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글이 됐다. 그때는 답이 명확했다.
왜 안 갔나
한 곳에서 합격 메일이 왔다. 원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등록금을 다시 봤다.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 세 곳 중 비싼 편이었다.
온라인이라 회사를 그만둘 필요는 없다. 그런데 2년치 등록금과 그 시간을 합쳐서, 이걸 나중에 연봉으로 회수하려면 얼마나 걸리나 계산해봤다. 너무 오래 걸렸다. 지금 받는 것 기준으로는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안 가기로 했다. 숫자로 보면 맞는 결정이었다.
며칠 만에 후회했다
결정하고 나서 며칠 지나니까 계속 걸렸다.
애초에 지원한 이유가 회수 계산으로 정당화되는 종류가 아니었다. 먼 훗날의 가능성을 열어두려고 한 건데, 그걸 2년 회수 기간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계산이 틀린 게 아니라 계산할 대상이 아닌 걸 계산한 거였다.
그래서 다시 문의했다. 다음 학기에 다시 등록할 수 있는지.
안 된다고 했다. 한 번 거절한 합격은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고. 다시 지원하는 건 가능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붙는다는 보장도 없다.
남는 것
지금 상태는 이렇다. 붙었고, 안 갔고, 후회하고, 되돌릴 수 없다.
돈 때문에 안 간 건 맞다. 그런데 돈이 문제였다면 지원할 때 이미 알았어야 했다. 등록금은 지원 전에도 공개돼 있었다. 붙고 나서야 진지하게 봤다는 건, 붙을 거라고 생각을 안 했거나, 붙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는 뜻이다.
추천서를 써주신 분들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도 아직 모르겠다.
다시 지원할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뭘 결정할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다음에 뭔가에 지원할 일이 생기면, 붙으면 갈 건지를 먼저 정하고 넣으려고 한다. 이번엔 그 순서가 거꾸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