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속 걸리는 게 하나 있다.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없다.

이상한 일이다. 회사는 계속 커지고 있고, 다루는 데이터도 사용자도 예전과 비교가 안 된다. 객관적으로 보면 규모는 매년 늘었다. 그런데 내가 기술적으로 나아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답이 안 나온다.

무슨 판단을 하고 있나

며칠 생각해보니 이런 것 같다.

내가 하루에 내리는 기술적 판단의 대부분이 된다 / 안 된다다. 이건 이번 스프린트에 가능하고 저건 어렵다, 이 구조로는 안 되고 저렇게 하면 된다. 회의에서 나오는 질문의 형태가 대체로 그렇고, 나는 그 질문에 답한다.

그건 판단이긴 한데, 이미 아는 것 안에서 하는 판단이다. 새로 배워야 답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반대로 “이걸 어떤 구조로 갈 것인가”, “지금 이 방식을 계속 쓰는 게 맞나” 같은, 답하려면 공부를 해야 하는 질문은 잘 안 나온다. 나오더라도 급한 일에 밀린다.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하루를 꽉 채워 일하는데도 뭔가 쌓이는 느낌이 안 드는 것 같다. 소모는 하는데 축적이 없다.

이게 누구 탓인가

처음에는 환경 탓을 하고 싶었다. 급한 일이 계속 들어오고, 인원은 늘 부족하고, 시간이 안 난다.

그런데 좀 더 보니 그렇게 정리하면 안 될 것 같다. 급한 일이 계속 있는 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그때 공부하겠다는 계획은, 지난 몇 년을 보면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그리고 “된다/안 된다"만 답하게 된 데는 내 지분이 있다. 그 질문에 답하는 게 제일 빠르고, 제일 티가 나고, 제일 편하다. 구조를 다시 보자고 말을 꺼내면 그때부터 일이 커지니까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무엇이 성장인가

여기서 한 번 걸린다. 내가 말하는 성장이 뭔지가 애매하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 그건 예전 기준이다. 그때는 배운 만큼 바로 결과가 나왔으니까 성장이 눈에 보였다. 지금은 내가 뭘 하나 배운다고 서비스가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아마 다른 종류인 것 같다. 모르는 영역이 어디인지 아는 것, 그리고 결정을 내릴 때 그 영역을 무시하지 않는 것. 지금 내가 불안한 건 실력이 안 늘어서가 아니라, 내가 안 보고 있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서다.

빅데이터를 다룬다면서 데이터베이스 원론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결정을 내리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스트리밍이나 백엔드 구조도 마찬가지다. 지금 급하지 않아서 안 보고 있는데, 필요해지는 시점에 배우기 시작하면 늦는다.

조급함에 대해

솔직히 조급함도 있다.

나에게 이 회사는 시작에 가깝다. 여기서 앞으로 훨씬 더 오래, 더 큰 걸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축적이 안 되고 있다는 감각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다만 조급함이 좋은 결정을 만들어준 적은 없었다. 이 감각을 없애려고 뭐라도 시작하는 것보다, 방향을 정하고 천천히 가는 게 맞을 것이다.

일단 정한 것

공부할 영역을 좁혀서 정한다. 다 하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지금은 데이터베이스 내부 동작과 대규모 처리 쪽으로 잡으려고 한다. 우리가 실제로 매일 부딪히는 지점이고, 모르고 내리는 결정이 제일 비싼 영역이기도 하다.

혼자 하지 않는다. 나만 공부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팀이 같이 볼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야 몇 년 뒤에 조직에 남는다. 어떤 방식이 좋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형식을 하나 만든다. 학위 과정을 알아보기도 했다. 진행할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알아보면서 든 생각은 강제성이 있는 형식이 하나쯤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의지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건 지난 몇 년으로 충분히 확인했다.


이 글은 결론이 없다. 아직 안 풀렸기 때문이다. 다만 “바쁘다"로 덮어두면 내년에도 똑같은 걸 쓰고 있을 것 같아서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