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 이어서. 1:1을 돌면서 들은 이야기를 직군별로 정리하다 보니 뚜렷한 경계가 하나 보였다.
시간이 절반으로 준 쪽
가장 극적으로 줄어든 건 콘텐츠·영상 제작 쪽이었다.
원래는 웹 채팅 화면에서 이것저것 물어가며 작업하던 걸, 작업 환경 안에서 바로 돌리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흐름이 끊기지 않게 됐다. 이미지 프롬프트, 영상 프롬프트, 설명에 들어갈 문구까지 한 번에 이어서 만들 수 있게 되니 한 편 만드는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케팅 쪽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왔다. 2주에 한 번 회의 내용을 정리해서 성과 자료로 옮기는 작업, 인기 있는 콘텐츠 포맷을 참고해 기획안 초안을 잡는 작업. 이런 건 잘 먹혔다.
끝내 안 먹힌 쪽
반대로 한 달 내내 방법을 못 찾은 영역도 있었다.
가장 뚜렷한 게 소재 발굴이었다. 무엇을 쓸지, 무엇을 다룰지를 처음부터 찾아달라고 시키는 일. 여러 방식으로 시도해봤지만 쓸 만한 결과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왔다. 나온 결과가 틀렸다기보다 평범해서 쓸 수 없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아이디어를 내는 일 자체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디어를 내는 건 아직 안 되는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었다.
경계는 능력이 아니라 업무 성격이었다
이걸 처음에는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으로 봤는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갈린 지점은 이거였다.
재료가 이미 있는 일이냐, 재료를 찾아오는 일이냐.
잘 먹힌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입력을 사람이 준비했다. 어떤 팀원은 자기가 먼저 소재를 정하고 관련 자료 링크를 열몇 개 모은 다음, 그걸 통째로 넘겨서 정리와 문장 다듬기를 시켰다. 이 방식은 잘 됐다. 반면 같은 도구에 “소재를 찾아줘"라고 시킨 경우는 잘 안 됐다.
같은 사람이, 같은 도구로, 같은 주에 한 작업인데 결과가 갈렸다. 그러니까 이건 숙련도 문제가 아니라 일의 구조 문제다.
정리하면 이런 경계다.
| 잘 먹힌 것 | 잘 안 먹힌 것 |
|---|---|
| 준 재료를 가공하기 | 재료를 찾아오기 |
| 형식 바꾸기 (회의록 → 보고서) | 무엇을 다룰지 정하기 |
| 초안 만들고 사람이 고치기 | 최종본 바로 뽑기 |
| 반복되는 형태의 작업 | 매번 판단이 다른 작업 |
| 검증할 방법이 있는 일 | 맞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일 |
마지막 줄이 실무에서는 제일 중요했다. 결과가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작업에는 쓰기 어렵다. 확인하는 데 드는 시간이 직접 하는 시간보다 길어지면 도구를 쓸 이유가 없어진다.
이 결과를 어떻게 다뤘나
세 가지를 바꿨다.
첫째, “안 먹힌 목록"을 공유 자산으로 만들었다. 각자 혼자 부딪혀서 포기한 벽이 알고 보니 다들 같은 벽이었다. 이걸 공유하니 최소한 같은 데서 두 번 시간 쓰는 일은 줄었다. 성공 사례보다 이쪽 공유가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됐다.
둘째, 기대치를 직군별로 다르게 잡았다. 전사 단일 기준으로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를 잡으면 어떤 직군은 손쉽게 넘고 어떤 직군은 아무리 해도 못 넘는다. 그건 도구 탓도 사람 탓도 아니고 업무 성격 탓이라, 애초에 같은 자로 재면 안 되는 거였다.
셋째, 잘 먹히는 형태로 업무를 바꿔보는 실험을 권했다. “소재를 찾아줘"가 안 되면, 소재는 내가 찾고 정리를 맡기는 식으로 일의 모양을 바꿔보는 것. 도구에 맞춰 일을 바꾸는 게 늘 옳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아직 안 풀린 것
판단이 들어가는 일을 어디까지 맡길 것인가는 여전히 답이 없다.
재료를 주고 가공을 시키는 건 명확하다. 그런데 실무의 상당 부분은 “이 중에 뭐가 중요한가"를 고르는 일이고, 그건 맡기기도 애매하고 안 맡기기도 아깝다. 지금은 고르는 건 사람이 하고 고른 뒤를 맡긴다는 정도로 선을 긋고 있는데, 이 선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다.
또 하나. 도구가 잘 되는 영역만 계속 쓰다 보면 그 영역의 일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고 다듬는 일은 쉬워졌는데 무엇을 할지 정하는 일은 그대로라면, 시간이 남는 만큼 정리할 거리를 더 만들게 되는 식이다. 이건 아직 관찰 중이라 결론은 없다.
한 달로는 이 정도까지 봤다. 다음에 다시 정리할 일이 생기면 그때 또 적어두려고 한다.